[중앙일보]15년 집념…일본에 있던 고려 나전합 들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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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집념…일본에 있던 고려 나전합 들고 돌아왔다
“15년 전 일본 소장자의 갤러리에서 처음 본 순간 반했다. 정교한 이음새와 화려한 무늬가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한눈에 문화재 보물급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꼭 가져오고 싶었는데 이제야 소원을 이뤘다.”
보물급 나전칠기…세계 3점뿐
최응천 이사장 끈질긴 협상 쾌거
학부 때 불교미술(공예)을 전공한 최 이사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 시절부터 이 문제에 매달렸다. 전 세계에 단 20여점이 전해지는 고려 나전칠기가 한국 문화유산의 높은 수준과 긍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그나마 완전한 형태는 15점. 그중 4점이 도쿄박물관에 있다는 걸 알고 2005년 보름 동안 연구 교류를 자청해 일본에 갔다.
이번에 환수한 나전합을 만난 것도 이 무렵 일본 전역의 고려 나전칠기 현황을 조사하면서다. 이를 포함한 10여점을 일본에서 빌려와 이듬해 국립중앙박물관 ‘천년의 빛-나전칠기’전에 선보였다. 우리 나전칠기 역사를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화제가 됐지만 이후 유물을 돌려보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재단은 2018년 소장자와 협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운명처럼” 그가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다시 만난 소장자는 그에 대한 신뢰로 결단을 내렸다. “고려의 것이니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언제 어떻게 이 땅을 떠났을지 모를 작은 합은 이렇게 올 초 돌아왔다.
정식 명칭은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이다. 10㎝ 남짓한 길이에 무게는 불과 50g. 국화 꽃잎과 넝쿨무늬가 함 둘레를 수놓듯 새겨져 있다. 영롱하게 빛나는 전복패, 온화한 색감의 대모(바다거북 등껍질), 금속선을 이용한 치밀한 장식 등 고려 전성기 기법이 고스란히 반영된 수작으로 평가된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번처럼 온전하고 아름다운 유물이 돌아온 것은 독보적 사례”라고 말했다.
고려 나전합은 커다란 원형 합(모자합·母子盒) 속에 5개의 작은 합(자합·子盒)이 들어있는 형태로 가운데 꽃 모양 합을 송엽형 자합 4개가 둘러싼 모습인데 현재 완전체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번에 환수한 나전합은 송엽형 자합 4개 중 하나이자 12세기 제작된 화장용 상자의 일부로 추정된다.1000년 가까운 세월에도 정갈한 이음새 그대로다. 재단의 김동현 유통조사부장은 “일부 미세하게 빠진 부분도 후대의 보수가 없어 고려 기법을 원형대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국내 온전한 형태의 고려 나전칠기 유물은 보물 1975호 나전경함(불교 경전을 보관하기 위한 함) 등 모두 3점이 됐다. 나전경함은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일본에서 사들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번에 돌아온 나전합도 이곳에 소장된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올 하반기 특별전 ‘고대의 빛깔, 옻칠’을 통해 국민들께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2020. 07. 03 개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