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마지막 가보 ‘세한도’까지 … 2대에 걸친 통큰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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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가보 ‘세한도’까지 … 2대에 걸친 통큰 기증
심사숙고 끝에 내놓기로 했소.”
고서화 수집가 손창근(91)씨는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걸작 ‘불이선란도’를 포함한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304점을 기증했다. 하지만 ‘세한도’는 끝내 품에서 내놓지 못했다. “너무 소중해서”였다. 그가 국보 제180호 세한도를 2년 지나 결국 국민에게 내놓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1년부터 위탁 관리 중인 세한도에 대해 손씨가 지난 1월 기증의사를 밝힘에 따라 현재 기증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고 20일 밝혔다. 박물관 관계자는 “기증과 관련된 제반 업무가 9월 초 마무리되는 대로 ‘세한도’를 언론에 공개하고 11월쯤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게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한도는 제주에 5년째 유배 중이던 추사가 59세 때 그린 것으로 초가와 함께 소나무 및 잣나무 대여섯 그루를 갈필로 소략히 그린 겨울 풍경이다. ‘세한도 속 소나무는 힘든 시기를 견디는 추사의 심정을 투영한 문인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유배 중인 스승을 위해 중국에서 귀한 서적을 보내준 역관 출신 제자 이상적에게 주려고 그렸다. 덕분에 원래는 가로 69.2㎝, 세로 23㎝짜리인 그림이 중국으로 건너가며 이상적이 청나라 명사 16명에게서 받은 감상문 등이 곁들여져 총 길이 10m가 넘는 두루마리 대작이 됐다. 일제 강점기인 1943년 컬렉터이자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일본인 소유가 된 이 그림을 되사려고 거금을 들고 현해탄을 건너갔던 일화는 유명하다. 손재형은 195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돈이 부족해지자 소장품을 저당 잡혔고 이 그림은 결국 개성 갑부인 손세기 집안 소유가 됐다. 그리고 아들인 손씨에 의해 국민 품에 안기게 된 것이다.
손씨의 기증은 선친으로부터 대를 이은 것이다. 개성의 이름난 인삼 무역 실업가였던 손세기(1903∼1983) 선생은 생전인 1974년 서강대에 ‘양사언필 초서’(보물 제1624호) 등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인 아들 손씨 역시 무역업을 하면서 부친의 나눔 정신을 이어갔다.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으로 1억원을 기부하고, 2012년엔 용인의 1000억원대 산림 200만평(서울 남산의 2배)을 국가에 기부했다. 88세가 되던 2017년에는 KAIST에 50억원 상당의 건물과 함께 1억원을 기부했다. 배기동 관장은 “평소 근검절약하며 수집한 문화재를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하는 손창근 선생의 결단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임을 다해가는 데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2020. 08. 20 개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