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국보 '세한도' 기증한 개성상인 후손에 서훈 추진
Link
Contents
국보 ‘세한도’ 기증한 개성상인 후손에 서훈 추진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작 세한도(歲寒圖·국보 180호)가 올 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손창근씨,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2년 전엔 선친이 남긴 304점 쾌척
8년 전엔 1000억대 용인 땅 기부
아들 “가진 분들 기부 계기 됐으면”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0일 “소장자인 손창근(91)씨가 2011년부터 박물관에 기탁해온 작품을 아예 기증했다”고 뒤늦게 밝혔다. 박물관 측은 손씨에 대해 서훈을 추진 중이다.
세한도는 실학자이자 문인화의 대가인 추사가 1844년 제주도 귀양살이를 하며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선물한 작품이다. ‘세한’은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의 ‘추운 계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게 남아 있음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 가로 69.2㎝, 세로 23㎝ 크기인데 이후 청나라 명사 16명에게서 받은 감상문을 비롯해 근현대의 오세창, 정인보 등의 글이 붙어 10m 넘는 두루마리 대작으로 변했다.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주위를 여백으로 처리해 극도의 절제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앞서 손씨는 개성의 인삼 무역으로 이름을 날린 부친 손세기(1903~83) 선생으로부터 물려받고 자신이 수집한 ‘손세기·손창근 컬렉션’(202건 304점)을 2018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추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포함해 15세기 최초의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 초간본(1447년), 정선·심사정·김득신·김수철·허련의 서화작품, 오재순·장승업·흥선대원군의 인장 등을 아우른다. 손씨가 2005·2011년 두 차례에 걸쳐 기탁했다가 기증으로 뜻을 바꾼 작품들이다. 기탁은 소유권을 넘기는 기증과 다르다. 당시에도 손씨는 ‘세한도’ 한 점만은 기탁 형태를 유지했다. 작품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언젠가 국가에 내드릴 것’이란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선친 손세기 선생도 1974년 서강대에 ‘양사언필 초서’(보물 제1624호) 등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다. 서울대 공대 졸업 후 사업 등으로 부를 쌓은 손씨도 선친의 나눔 정신을 이었다.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으로 1억원을 내고, 2012년엔 50여 년간 가꾼 경기도 용인의 1000억원대 산림 200만 평(서울 남산의 2배 면적)을 국가에 기부했다. 2017년에도 50억원 상당의 건물과 1억원을 KAIST에 기증했다.
손씨의 아들 손성규(61·경영학) 연세대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2018년 1차 기증 이후 고민해 오시다 올 초 어머니의 강력한 권고로 세한도 기증을 결심하셨다”면서 “사회적으로 많이 가지신 분들이 욕심내지 않고 인생을 정리하는 과정에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남1녀 중 막내인 손 교수는 “용인 땅 기부 땐 가족 동의를 구하셨지만 고서화는 온전히 부모님 뜻으로 하셨다”며 “아버지는 농담조로 용인 땅이 1000억원이면 고서화는 열배 이상의 가치라고 하신 적이 있다”고 전했다.
세한도는 이상적이 죽은 뒤 제자 김병선을 거쳐 민영휘 집안이 소유했다. 그러다 경매를 통해 추사 연구가인 일본인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1879~1948)에게 넘어갔다. 후지쓰카는 서예가 손재형(1903~81)씨가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넘겨 달라”고 요청해도 거듭 거절했다고 한다. 손씨가 두 달간 매일 문안인사로 청을 하자 “세한도를 간직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손씨”라며 1944년 세한도를 대가 없이 건넸다. 1971년 손재형씨가 내놓은 세한도를 인수한 게 손세기 선생이다.
이로써 국립중앙박물관엔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203건 305점의 문화재 전체가 기증됐다. 박물관은 “올 11월 세한도를 공개하는 특별전시 개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2020. 08. 21 개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