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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기왓장 검사

Date
08-02-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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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의사, 검사는 칼을 든 직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분하면 칼도 도검(刀劍)으로 나뉜다. 즉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劍)이 있다. 칼을 잘 휘두르면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이 되고, 잘못 휘두르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도'가 된다. 그래서 칼잡이는 '살인도'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이 직업적 부담감을 과연 어떤 방법으로 덜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술인가? 골프인가? 아니면 문화예술인가? 서울 부암동에 '기와박물관'(柳琴박물관)을 세워 일반에게 공개한 유창종(柳昌宗·63) 변호사는 이 긴장감을 기왓장으로 떨쳐낸 것 같다. 그는 현직 검사 시절에 '기왓장 검사'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기와에 미쳤기(?) 때문이다. 시간만 나면 전국 각지의 유적지에 기왓장을 보러 다녔고, 돈만 생기면 희귀한 기왓장을 구입하는 데에다가 썼다.



그는 30대 중반인 1978년 충주지청에 근무하면서 중앙탑에서 나온 삼국시대 기와를 보는 순간부터 기와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충주는 삼국문화가 섞여 있는 지역이라 여기에서 출토된 기와도 삼국문화가 혼융되어 있었다고 한다. 기와 색깔은 회백색인데, 이는 백제색이다. 모양은 웅건하니 이는 고구려의 맛이고, 연꽃이 6개인 것(六葉기와)은 고신라 초기의 양태에 속한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웅건한 맛과, 백제의 부드러움, 신라의 소박함을 보려면 기와를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시대의 미의식, 문화, 가치관이 기와에 배어 있다. 서양에는 이러한 기와문화가 없었다. 기와에다 문양을 넣고 형태를 다양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청기와'와 같은 명품기와가 그렇다. 왜 우리조상들은 잘 보이지 않는 지붕꼭대기에다가 이처럼 화려한 장식을 하였단 말인가? 한·중·일을 비롯해 베트남·태국 등 동남아시아는 기와를 예술적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킨 '기와문명권'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동아시아 각국 기와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비교해 보면 문화의 교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세계적인 기와 수집가인 유창종씨의 주장이다. 이번에 불에 탄 숭례문 기왓장을 생각 없이 쓰레기장에 마구 버릴 일이 아니다. 기왓장에도 역사와 문화가 새겨져 있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입력 : 2008.02.15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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