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s of National Museum of Korea
Home
  • News
  • Report

Report

[문화일보]“백제 왕관 위에는 ‘매’가 앉아있었다”

Date
13-01-02 17:01
Hit
1,387
Contents

“백제 왕관 위에는 ‘매’가 앉아있었다”
기획展 책으로 엮은 ‘백제의 冠’ 2권 출간

2012년 05월 15일


지난 2003년 충남 공주 수촌리 유적을 시작으로 서산 부장리와 전남 고흥 길두리 등지에서 2000년대 잇따라 발견된 백제 금동모관(고깔 모양의 금동관·주로 5세기대 사용)의 특징은 좌우 측판(옆판)의 세부 문양은 물론, 전후 또는 좌우 입식 가운데 새와 관련된 것이 많다는 점이다. 가령 지금까지 확인된 백제 금동관 가운데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며 유일하게 수발을 세운 대롱이 2개나 확인된 공주 수촌리 Ⅱ지점 1호 토광묘 출토 금동모관의 뒤쪽에 세운 장식(후입식)은 새가 꼬리를 펼친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공주 수촌리 Ⅱ지점 4호 석실분 출토 금동모관의 후입식도 마찬가지다.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출토 금동모관의 좌우 입식도 조우형(鳥羽形·새 날개 모양)이며 서산 부장리 분구묘 5호분 1호 토광묘 출토 금동모관의 경우, 측판에 용 문양과 함께 서조(瑞鳥)의 문양이 표현돼 있다.


이와 관련, 노중국(사학) 계명대 교수는 최근 출간된 ‘백제의 관:논고’(국립공주박물관)에 특별기고한 논문 ‘백제 관 장식의 상징성’에서 백제 금동관 장식의 유형으로 조익(우)형과 수지형(樹枝形·나뭇가지 모양)을 든 뒤 공주 수촌리 출토 금동모관의 조우형 장식은 비상하는 새의 모습, 특히 새 가운데서 백제 왕실의 상징인 매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새의 꼬리를 형상화한 금동모관의 후입식을 기존에 편의적으로 방패형 또는 광배형(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모양) 장식이라고 불러온 것이 잘못됐다고 밝힌 노 교수는 백제가 신성하게 여긴 새가 매였음을 역설한다.


‘제왕운기’에 백제의 별칭으로 매를 의미하는 응준(鷹 )이 나오고 ‘삼국유사 황룡사구층탑조’에 백제를 응유(鷹遊)로 표기하고 있는 게 바로 이를 말해 준다는 것. 노 교수는 “매는 백제에서 왕실의 상징으로 관념됐을 뿐만 아니라 외교관계에서는 방물(方物)로도 이용됐고, 놀이문화의 하나로서 매 사냥은 귀족들과 민가에서 널리 애용됐다”고 강조했다.


도판·해설과 논고 편 등 총 2권으로 출간된 ‘백제의 관’은 국립공주박물관이 지난 2010년 개최한 동명의 기획특별전의 성과와 관련 자료를 집성한 것이다.


특히 ‘백제의 관:도판·해설’에는 백제 유적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관장식 44점에 대한 제작기법·문양 등에 대한 세부 분석자료 및 관련 유적 20곳에 대한 설명이 수록돼 있어 전문가들에게 연구의 기초자료를 제공해 준다.


전북 익산 입점리 1호분 출토 금동관의 경우, 금동모관 외에 금동대관(帶冠·띠 모양의 금동관)으로 추정되는 편 등 관련 출토품 일체를 촬영·수록했다. 금동삼각형장식 한가운데 새겨져 있는 봉황 등이 눈길을 끄는 익산 입점리 출토 금동관 부속품을 통해서도 노 교수가 논문에서 말한 백제가 새와 나무를 신성시했다는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 발견된 백제 금동모관과의 비교를 통해 신라관에서 백제계 모관으로 분류가 바뀐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금동모관 등 백제 금동관(금동모관) 9점(이 중 발굴품은 7점)과 공주 무령왕릉 출토 금제관식 2점(국보 제 154·155호), 부여 능산리 능안골 36호분 동편출토 은화(제)관식 및 철제 관테 등 관련 자료가 망라돼 있다.


‘백제의 관:논고’에는 노 교수의 특별기고 논문을 비롯해 총 12편의 논문이 수록돼 있어 백제의 관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돕는다. 무령왕릉 출토 왕·왕비의 금제관식 2점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특별기고 논문 ‘무령왕릉 출토 금관의 조형적 구성원리와 상징구조’ 등 흥미로운 논문들이 많다.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실의 최기은(보존처리 담당)씨는 논고 편에 수록된 ‘백제 은화관식의 제작방식에 대한 일검토’라는 논문으로 국립박물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올해 국립중앙박물관회 학술상 금관상을 수상했다. 최씨는 백제 사비기(538~660년) 횡혈식석실분에서 출토된 은화관식 10점을 분석한 결과,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16관등 중 제6품인 나솔(奈率) 이상의 고급 관인들이 착용한 상징물인 은화관식 중 같은 크기나 두께의 유물은 1점도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은화관식의 의장에 대한 규정만 존재했을 뿐 모본(母本)이나 세부 규정 없이 ‘1도안·1완성품’으로 제작된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최씨는 주장했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