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900년의 신비 … 고려 나전경함 일본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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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년의 신비 … 고려 나전경함 일본서 돌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 공개
일본 개인소장가 수 년간 설득
박물관 후원모임서 비용 부담
모란당초 등 조각 2만5000개
\"온전한 모양 전세계 9점뿐\"
덮고 있던 보자기를 젖히자 900년 세월을 견뎌온 짙은 갈색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뚜껑과 몸통을 촘촘하게 장식한 모란당초무늬가 별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15일 오전 서울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 제2강의실. 전 세계에 9점뿐인 고려 나전경함(螺鈿經函) 중 하나가 처음 고향에 돌아와 자태를 선보인 순간, 귀한 손님을 맞는 국박 관계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영나 관장은 “청자(靑磁), 불화(佛畵)와 더불어 고려 미술을 대표하는 나전칠기가 국내에 한 점도 없었는데 이렇게 상태가 좋은 나전경함이 들어와 기쁘다”고 인사했다. 김 관장은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의 환수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진 요즘, 국립중앙박물관회 노력으로 국보급 문화재를 기증받게 됐다”고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유물을 본 순간, 그 감격을 어찌….” 신성수(62·고려산업 회장) 국립중앙박물관회(이하 박물관회) 컬렉션위원회 위원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해 가을부터 고려 나전경함 상태를 조사하려 여러 번 일본 교토를 오가며 공을 들인 신 위원장은 “반드시 한국으로 가져와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어려웠던 환수 과정을 설명했다.
지난 5월 23일 국박 수장고에 들어와 이날 기증식을 열며 언론에 공개된 고려 나전경함은 높이 22.6㎝, 폭 41.9X20.0㎝ 크기에 무게 2.53㎏으로 아담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뚜껑 윗부분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모죽임한 장방형으로 원만한 부드러움을 자랑한다. 특히 경함을 장식하고 있는 주 무늬인 모란당초(牡丹唐草) 무늬 외에 마엽(麻葉) 무늬, 귀갑(龜甲) 무늬, 연주(連珠) 무늬가 잘 어우러져 걸작의 기품을 풍긴다.
이건무(67·도광문화 포럼 대표) 전 국박 관장은 “일본 키타무라(北村) 미술관 소장품보다 모란당초무늬 완성도가 높고 보존 상태가 좋다”며 “불교국가에서 최고의 기술을 동원해 신앙의 힘으로 만들었기에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용희 국박 보존과학실 부장은 “나전 조각만 2만5000개 이상 섬세하게 붙인 고된 작업의 산물로 이렇게 다양한 무늬를 지닌 나전칠기를 보게 된 건 영광”이라고 했다. 국박은 앞으로 세밀한 조사 연구를 거친 뒤 국보(國寶) 지정 등 유물등록절차를 밟아 이른 시일 안에 상설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고려 나전경함=경함(經函)은 불교 경전을 담는 용도로 제작된 함이다. 1231년 몽고에 침략당한 고려에서는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대장경(大藏經)을 만들었고 이를 보관하는 경함이 대량으로 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 나전(螺鈿)은 당나라 때 시작돼 고려 시대에 동아시아 최고 수준을 일궜다. 나전칠기는 나무로 기물을 만든 뒤 굵은 삼베를 바르고 그 위에 자개를 붙인 후 옻칠을 덧입혀 반반하게 만들었다. 고려 시대 것이 주름질이 정교하고 치밀하며 다양한 색채를 쓰고 금속선을 병행해 가장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유물로 꼽힌다.@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