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NEWS] ‘수월관음도’ 함에 찍힌 도쿠가와 문양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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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불화의 백미로 꼽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한 점이 일본으로 유출됐다가 마침내 고국의 품에 안겼다. 돌아온 수월관음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전 세계에 단 46점뿐. 5점이 국내에 있지만 리움미술관과 호림박물관 등 모두 사립미술관과 박물관에서만 소장하고 있던 터라 이번처럼 국립박물관이 \'수월관음도\'를 소장하고 관리하게 된 건 그 의미가 남다르다.
뜻있는 기업인의 문화재 사랑으로 \'환수\'
\'수월관음도\'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한 기업인의 문화재 사랑 덕분이었다. 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윤 회장은 올해 초 일본의 개인 소장자로부터 25억 원에 이 작품을 구입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윤 회장은 \"7년 전 쯤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에 들렀을 때 해설사가 수월관음도를 설명하며 \'한국 국립박물관에는 없다\'고 말해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하며 \'수월관음도\'와의 운명과도 같은 인연의 시작을 풀어냈다.
그리고 그는 지난 봄 우연히 \"일본의 한 미술품 중개상이 재일교포 2세가 소장하고 있는 수월관음도를 한국에 들고 와 구입할 사람을 알아보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며 \"그림이 다시 나가면 한국에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어 구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불화에 생명력이 있어 운명적으로 온 것 같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수월관음도\' 700년의 세월을 건너오다
수월관음도는 불경인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나오는 관음보살의 거처와 형상을 묘사한 그림이다. 덕이 있는 고승을 찾아 다니던 선재동자가 달빛이 비치는 보타락가산의 바위에 앉아있는 관음보살을 찾아뵙는 장면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기증된 수월관음도는 14세기 중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처음 일반에 공개됐다. 화면 크기는 세로 91cm, 가로 43cm로 다른 수월관음도에 비해 작은 편이다. 공개된 수월관음도는 오랫동안 들여다 봐야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박락과 훼손이 진행됐다.
하지만 제작한 지 약 700년이 시간이 흘렀다는 점을 감안해서 보면, 화면의 중요한 부분은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어 가치가 크다는 게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특히 적외선 사진을 통해 보면 관음보살의 온화한 미소와 깨달음을 구하는 선재동자의 모습 등 그림이 본래 간직하고 있는 고려 불화의 특징들을 더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보존 처리에 앞서 11월 13일까지 상설전시실 2층 불교회화실에서 \'수월관음도\'를 일반에 공개한다.
\'수월관음도\' 보관함에 찍힌 도쿠가와 가문 문양의 비밀은?
특히 이 그림의 족자와 보관함에는 일본에 유입된 뒤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묵서와 문양이 남아 있어 보는 이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족자에는 \"중국 장사공(張思恭)의 그림\"이라는 문구와 \"세이간지(아이치현의 사찰로 추정) 보물로 영옹(英翁)이 (족자) 보수에 기여했다\"는 문장이 나오고, 보관함에는 도쿠가와 가문과 관련이 있는 문양이 찍혀 있다. 세 잎의 접시꽃이 그려진 문양이다.
보관함에 이런 문양이 찍혀 있는 이유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 정명희 학예연구관은 \"도쿠가와 가문이 이 그림을 소장했을 가능성도 있고, 그림을 소장했던 사찰을 도쿠가와 가문이 후원했을 가능성 등 여러 추정이 가능하다\"며 \"향후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원나라의 불화가(佛畵家)인 장사공이 언급된 건 1970년대까지는 일본에서 고려불화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어 좋은 그림은 모두 원나라 불화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고려불화의 소장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나선 기업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문화재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파악한 해외 유출 우리 문화재는 현재 16만 여 점. 하지만 복잡한 외교적 협상에다, 정부 예산도 충분치 않아 환수 자체가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해외 반출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기업들의 \'기증\'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예로 지난 2014년 국내로 돌아온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상자인 \'고려나전경함\'을 들 수 있다. 이 문화재는 하나금융그룹 김정태 회장이 주도하는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일본에서 구입해 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또 조선 불화 \'석가삼존도\' 역시 한 외국계 게임 회사의 기금 지원 덕분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유물 구입비가 턱없이 부족한 박물관이 선뜻 엄두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뜻있는 기업이나 개인의 기증이 절실해지는 이유이다.
이같은 기업들의 문화재 기증 활동에 대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국제협력실 강임산 팀장은 \"문화재 반환에 대한 이력, \'어떤 기업이 참여했다\' 라는 부분들이 문화재의 반환과 함께 계속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해외로 유출된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비싼 돈을 주고 다시 구입해 올 수밖에 없는 현실은 다소 씁쓸하다. 정부가 문화재 유출 경로를 밝히고 불법성을 입증해야 하는 등 어려운 과정이지만 외교적 노력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기업들이 나서서 문화재를 구입해 기증하는 사회적 기부 방식은 가장 현실적인 문화재 환수 운동이 될 수 있다. 수월관음도를 귀향시킨 윤 회장의 자존심이 다른 기업들도 해외 문화재 환수에 동참하도록 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