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His story) '단골 양복점 주인 후원으로 시작... 문화예술 모른다면 메마른 경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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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양복점 주인 추천으로 시작… 문화예술 모른다면 메마른 경영자” (2019.07.31 기사)
▲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은 “처음에는 예술품에 대해 백지상태였으나 꾸준히 인사동 일대를 누비며 독학으로 감식안을 키웠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유 회장의 ‘컬렉션 인생’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고는 한다. 기업인이 그것도 경영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왜 업무와 무관한 분야의 컬렉션에 공을 들이는지…. 이런 경우 질문자는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기업의 경우도 경영자가 재무와 마케팅만 알고 문화예술에 무지하다면 이성만 있고 감성은 메마른 경영자다. 그 기업의 문화에 어찌 깊이가 있겠으며, 어떻게 21세기에 걸맞은 창조적 경영이 가능하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단골 양복점 주인 오송(吳松) 씨는 나의 은인이다. 서화 애호가에다가 문화재 수집에 취미가 있었던 그분은 머릿속에 회사 일만 꽉 차 있던 나를 보고 수양을 통해 감성을 키우라고 권했다. 그분이 추천한 수양법이 그림 감상이었다. 인사동의 화랑을 드나들며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그림을 감상하다 보니 점점 한두 점씩 사모으게 됐고 나중에는 도자기와 민속품까지 수집했다. 제약회사에서 화장품회사로 옮긴 후에는 화장 문화와 관련된 유물 또는 여성용품 위주로 사 모았다. 외국에 가도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화랑이나 벼룩시장을 찾았다. 사실 처음 인사동에 드나들 때는 그림에 관해서 백지상태였다. 이 그림이나 저 그림이나 다 비슷했다. 하지만 매일 다니다 보니 각 작품의 특색과 완성도를 보는 눈이 생겨나고 작가의 화풍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독학으로 감식안을 익힌 것이다.
구경꾼 노릇 몇 달이 지나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생겨났다. 한국화 6대가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6대가란 심향 박승무, 의제 허백련, 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 소정 변관식이었다. 첫 번째 구매 작품은 5000원에 산 두산 정술원의 백납병 쪽 그림이었다.
일단 그림에 취미를 붙이자 틈만 나면 인사동으로 달려갔다. 동아제약 영업상무 재직 중에는 연말 보너스를 몽땅 털어 소정 변관식의 산수화를 사기도 했다.
화랑마다 외상이 깔려 있어 월급 타면 외상값 갚기에 바빴다. 나의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분이 민속품 분야를 권했다. 화랑 옆 상점들을 그제야 둘러보니 제약과 관련된 민속품과 공예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약제를 빻거나 즙을 낼 때 쓰는 약연(藥년), 약의 무게를 달 때 쓰는 약저울, 절구, 약탕관 등을 하나씩 사들였다.
미적 취향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양의 유물들에 감탄하던 내가 우리 선인들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을 물려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라미화장품으로 발령이 난 후에는 전통 화장도구, 화장용기, 장신구 등 여성용품을 사 모았다. 청자기름병, 백자 분항아리, 분접시, 고려 동경, 비녀, 빗치개, 노리개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한 점 두 점 사모은 것이 엄청난 규모가 돼 1985년 경기 이천에 라미화장품 공장을 지으면서 전시관도 마련했다.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이 ‘약장사료관’이라고 이름도 지어줬다.(유상옥 회장의 경영에세이 ‘성취의 기쁨을 누려라’에서 발췌)
△1933년 충남 청양 출생 △덕수상고 △고려대 상학과(1959) △동아제약 영업담당 상무(1974) △라미화장품 대표(1977) △미국 유니언대 경영학 박사(1981)△코리아나화장품 대표(1988) △대한화장품공업협회 회장(1995) △국민훈장 모란장(1998) △한국박물관회 회장(2002) △스페이스 씨 개관(2003)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기증(2009) △문화훈장 옥관장(2009)
김선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