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NEWS] 나라 잃은 ‘달항아리’·‘고려 나전’…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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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 나온 우리 국보급 문화재, 돌아올 수 있을까?
▲ 백자대호 (조선 18세기)
조선백자입니다. 대호(大壺)는 큰 항아리란 뜻입니다. 우리에겐 ‘달항아리’란 이름이 더 친숙합니다. 휘영청 둥근 달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누가 붙였는지 몰라도 참 절묘하게 잘 지은 이름입니다. 위 사진 속 유물은 18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걸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 도자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달항아리는 주로 18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해요. 18세기 전반에 조선 왕실 도자기를 구웠던 관요(官窯)인 경기도 광주의‘금사리 가마’에서만 달항아리를 만들었다네요. 더구나 이 항아리는 높이가 42센티미터인데 40센티미터가 넘는 큰 항아리(대호)는 주로 18세기 전반에 만들어졌습니다.
18세기 후반이 되면 달항아리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모양도 완벽한 원형을 이루게 되고, 19세기에 접어들면 모양이 위아래로 길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젖의 빛깔처럼 불투명한 흰색을 가리키는 유백색(乳白色)의 색조가 은은한 멋을 풍기는 아름다운 명품입니다.
모양은 또 어떤가요. 달항아리는 본래 비대칭입니다. 매끈한 균형과 비례를 갖춘 것이 아니라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조금씩 다 다릅니다.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할까요? 왜 이렇게 됐냐면 달항아리를 한 번에 구워낸 게 아니라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에 가운데를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달항아리는 보물 1437호로 지정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것 말고도 달항아리 한 점이 더 있습니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국보 달항아리가 있고요. 이렇게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달항아리가 7점인데, 나머지를 다 합해도 국내외에 전해지는 달항아리는 고작 20여 점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 많은 달항아리가 다 어디로 갔는지 원.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달항아리(보물 제1437호, 左)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달항아리(국보 제309호, 右)
워낙 귀하다 보니 달항아리가 경매에 나온 것 자체가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 항아리는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한 일본인 수집가가 50년 넘게 보관해오다가 이번에 국내 미술품 경매업체인 서울옥션을 통해 경매에 나왔습니다. 만약 경매를 통해 국내로 돌아오게 된다면 곧바로 문화재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지요.
매끈한 명품 도자기에 길들여진 눈엔 왠지 뭔가 투박해 보이고 못생긴 것 같지만, 사실 달항아리는 수많은 미술사학자와 예술가를 매료시킨 우리의 독창적인 항아리입니다. 그 단순 소박하면서도 서민적 체취가 짙게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감동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거든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책으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은 달항아리를 보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이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 형태의 투박함에 대해서도 최순우 선생은 멋진 해석을 남겼습니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 하면 혹시 심미에 대한 건강한 태도가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조선 자기의 아름다움은 계산을 초월한 이러한 설명이 필요하리만큼 신기롭고도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달항아리를 두고 ‘잘생긴 부잣집 맏며느리를 보는 듯한 넉넉함’이 있다고 하나 봅니다.
▲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달항아리
위의 사진은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된 달항아리입니다. 이 유물에는 실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요. 유홍준 선생의 <국보순례>라는 책에 그 자세한 내막이 소개돼 있기에 핵심만 추려 소개해 드립니다.
원래 이 항아리는 일본의 한 사찰에 소장돼 있었는데, 1995년에 도둑이 들어 항아리를 들고 도망가다가 경비원들에게 쫓기자 그만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답니다. 당연히 항아리는 박살이 났고, 깨진 파편만 300개가 넘었다고 해요. 사찰 측에서 깨진 조각에 가루까지 모조리 쓸어 담아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기증을 했고, 미술관 측이 2년 동안 조각 맞추기를 해본 뒤 복원기술자에게 맡겼답니다. 그랬더니 6개월 만에 완벽하게 복원을 해냈다는 거죠. 그래서 유홍준 선생 말마따나 “이후 이 항아리는 미술품 복원의 기적이라는 칭송과 함께 전설적인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참 대단하죠. 다른 건 몰라도 일본의 놀라운 문화재 복원 기술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경매에 나온 일본인 소장가의 우리 도자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수리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일본에선 금이 가거나 깨진 흔적을 수리하면서 그 흔적을 그대로 남긴다고 합니다. 그것마저 그 도자기가 걸어온 역사이니까요. 말끔하게 지우는 게 능사가 아니란 얘기죠. 깊이 새기고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다시 살아난 전설의 달항아리가 2005년 8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백자 달항아리 특별전>에 출품됐습니다. 당시 뉴스를 찾아보니 복원에 얽힌 사연이 소개돼 있네요.
[연관 기사]
☞ 조선 곡선미의 백미 ‘달항아리’ 공개 (KBS 뉴스9 2005년 8월 17일)
▲ 김환기 ‘백자와 꽃’ (환기미술관 소장)
도대체 그럼 달항아리는 무엇에 쓰는 물건이었을까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소장품 검색을 해보니 ‘용도’ 란에 ‘식기’라고 돼 있습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이었단 얘긴데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도자기 전문가로 유명한 윤용이 선생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윤용이 선생의 명저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에서 한 대목을 인용해 봅니다. “달항아리의 정확한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에 조선 항아리를 수집하던 일본인들이 양반가의 뒤주 위에 이 달항아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이 구전되기도 합니다. 또한, 가끔 표면에 간장 얼룩 같은 이 배어 나온 예도 있어 장류를 담는 데도 일부 사용된 듯싶습니다.” 그 뒤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솔직히 장을 담는 용도로 쓰기에는 아깝습니다.”
아깝죠. 제 생각도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우리가 고미술품으로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그 시대에는 뭔가 다 쓸모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실제로 사용된 것들이란 거죠. 후손들이 달항아리를 신줏단지 모시듯 귀하게 모셔 놓고 감상하는 걸 보면 조상님들이 적이 놀라실 지도 모를 일입니다. 같은 물건도 시대에 변하면 대접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그런 달항아리는 우리 근대 미술의 거장인 김환기 화백부터 현대 미술가인 강익중 작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예술가를 매료시켰는지 모릅니다. 김환기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백자의 꽃>이란 작품을 보면 가장 한국적인 멋과 맛이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예술가의 열정과 고뇌가 전해져 오는 것만 같습니다.
▲ 나전칠국당초문합 (고려시대)
다시 경매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번에 달항아리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유물이 또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시는 고려 시대 나전칠기 공예품입니다. 취재를 하다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고려 시대 나전칠기는 일단 너무나도 귀하더군요. 조선 시대 나전은 꽤 남아 있는데, 고려 나전은 나오기만 하면 곧바로 국보나 보물로 지정해도 무방할 정도로 희귀합니다.
가로 13.7, 세로 10, 높이 7.3센티미터로 아담한 크기의 이 작은 상자는 뚜껑을 여닫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는데요. 바닥을 제외한 모든 면에 국당초문(菊唐草文), 즉 국화와 풀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꽃무늬에서 시작해 넝쿨이 이어져 작은 잎사귀에 이르기까지 그 표현이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희대의 명품입니다.
‘합’이라 불리는 이 상자는 불교 국가인 고려에서 작은 불경이나 불구(불교와 관련된 갖가지 도구)를 담은 용도로 만들어진 걸로 여겨집니다. 줄잡아 최소 500년이 넘은 유물인데도 원형이 잘 보존된 걸 보면 소장가가 얼마나 귀하게 모셨는지 능히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고려 시대 나전은 국내외를 통틀어 남아 있는 게 10여 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번에 이 유물이 경매에 나오자 언론들이 앞다퉈 ‘국내 유일’ 어쩌고 하는데 잘못된 보도입니다. 고려 시대 나전은 아래 사진에서 보실 수 있듯 국립중앙박물관에 두 점이 소장돼 있습니다.
아래 왼쪽은 ‘나전 국화 넝쿨무늬 불자’라고 해서 역시 불교 의식용 도구이고, 오른쪽은 ‘고려나전경함’입니다. 경함(經函)은 말 그대로 불교 경전을 담은 상자입니다. 하나같이 귀하디귀한 보물들이지요.
▲ 나전 국화 넝쿨무늬 불자(左)와 고려나전경함(右)
이 국보급 유물은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삼고초려를 하다시피 일본에서 어렵사리 구입해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나전경함은 일본과 미국, 유럽 등에 딱 8점만 남아 있고 국내엔 단 한 점도 없었는데, 이렇게 귀한 보물이 뜻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고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되찾아온 사례로 본보기 삼을 만합니다.
일본인 소장가가 이번 경매에 내놓은 우리 문화재가 55점입니다. 이 귀중한 유물들은 오는 29일 홍콩에서 경매에 붙여집니다. 백자 달항아리나 고려 나전을 비롯해서 국보급으로 평가될 만한 유물들에 뜻있는 마음과 손길이 닿아 부디 우리 품으로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물론 우리 유물이 꼭 국내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또 어떤 귀한 유물은 해외의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한국의 미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역할도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해외 반출 문화재 환수는 우리 시대뿐 아니라 후손들에게까지 대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과제입니다.
하나의 유물은 단지 유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그 속엔 조상의 숨결과 혼이, 물질을 넘어서는 정신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그걸 우리 세대뿐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도 직접 보고 느끼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어야 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