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매거진]비틀대던 ‘진주햄’ 살린 형제 경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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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대던 ‘진주햄’ 살린 형제 경영의 힘
박정진(왼쪽)
1975년생. 서울대 공업화학과 졸업. 미 로체스터대 MBA. 삼성증권 M&A팀. 씨티그룹 상무. 진주햄 대표이사 사장(현).
박경진(오른쪽)
1980년생.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 졸업. 노틸러스효성. 네모파트너즈. 진주햄 부사장(현). 컨비니언스 대표(현).
중국 어육 소시지 시장 1위, 국내 수제맥주 시장 진출, 매출 1000억 원 돌파, 기업 이미지(CI) 변경. ‘천하장사’ 소시지로 유명한 진주햄에 최근 불어 닥친 심상치 않은 변화다. 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중견 식품 업체의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한 주인공은 바로 ‘형제 경영인’, 박정진(40)·박경진(35) 공동대표다. 아버지인 박재복 회장이 2010년 10월 작고하면서 회사를 물려받은 이들은 진주햄을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이다.
진주햄의 경영 참여는 동생인 박경진 부사장이 먼저 시작했다.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정보기술(IT) 기업인 노틸러스효성의 신사업 기획 부문, 국내 최대 로컬 전략 컨설팅 회사인 네모파트너즈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2006년 아버지의 권유로 경영에 첫 발을 내디뎠다.
형 박정진 사장은 동생보다 늦은 2013년 4월 회사에 합류했다. 서울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체스터대 MBA를 수료한 그는 삼성증권 인수·합병(M&A)팀을 거쳐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에서 기업 M&A·주식·채권 담당 상무로 일했다. 진주햄 내부에서 ‘재무통’으로 불리는 그는 재무 역량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브랜드 전략 수립, 회사의 신규 성장 동력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반면 동생은 회사의 생산·영업·마케팅·관리 업무 전반을 총괄한다.
가업에 다소 늦게 합류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진주햄 오너의 아들로 태어난 이들은 무조건 후계자가 돼야 하는 정해진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각자의 꿈을 키우며 역량을 다져 왔던 것이다.
쉰 살 넘은 ‘젊은 기업’으로 변신
경영진에 이들 형제의 ‘젊은 피’가 수혈되면서부터 회사의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규모부터 달라졌다. 1963년 출범한 진주햄은 2013년 처음으로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2014년 역시 1030억 원을 기록했고 2020년은 3000억 원이 목표다.
매출이 성장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형제는 기존 고객들 외에 다양한 세대를 타깃으로 고객을 세분화하며 지속적으로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주력해 왔다. ‘키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천하장사 소시지의 패키지에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 ‘뽀롱뽀롱 뽀로로’, ‘라바’ 등의 캐릭터를 접목했다. 천하장사는 명태 살로 만든 미니 소시지로, 국내 시장점유율 약 30%를 차지하는 업계 1등 제품이다. 다이어트와 운동에 관심 많은 계층을 겨냥한 ‘숀리’ 닭가슴살 제품들과 20, 30대 여성들을 겨냥해 ‘미인이 먹는 간식’, 핫도그·꼬치·순대 등의 길거리 음식 ‘밤이면 밤마다 생각나는 포차’ 시리즈도 냈다.
중국 시장의 선전도 한몫했다. ‘대력천장’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판매 중인 천하장사가 대륙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중국 어린이들의 건강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급기야 2014년 중국에서 7400만 개가 팔려 중국 어육(魚肉) 소시지 시장에서 1위에 올랐다. 매출은 중국에 처음 진출했던 2011년 3억8000만 원에서 3년 만에 20배 수준인 77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진주햄은 중국에 이어 베트남·태국 등 동남아 비즈니스로 확장할 계획이다.
중국인에게 인기가 높은 천하장사는 2014년 11월 동화면세점과 신라면세점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소시지 제품으로는 천하장사가 첫 입점 사례다.
CI도 바꿨다. 사명은 진주햄을 유지하지만 영문 브랜드에서는 ‘햄’을 빼고 ‘JINJU’만 쓴다.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정 중 일부다.
최근에는 수제 맥주 사업에 뛰어들었다. 진주햄은 지난 2월 11일 수제 맥주를 제조하는 회사 ‘카브루’를 인수하며 주류 시장으로 보폭을 넓혔다. 카브루는 국내 1세대 수제 맥주 제조회사로, 레스토랑·골프장·호텔 등에 맥주를 공급한다.
형제의 수제 맥주 시장 진출은 햄과 소시지 분야에서 진주햄의 핵심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먹을거리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박 사장은 “수제 맥주 사업을 통해 진주햄이 신선하고 젊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주고 동시에 소시지와 햄 등 기존 사업과도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수제 맥주는 젊은층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틈새 주류 시장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역시 이러한 트렌드에 발맞춰 지난해 말 반포동에 수제 맥주 전문점을 내기도 했다. 정종욱 진주햄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외식업은 트렌드에 민감하며 변화가 빠르다. 젊은 두 대표가 트렌드 세터라는 게 큰 장점”이라며 “경영자가 트렌드나 식품 전문 용어, 예를 들어 수비드(저온 조리법)까지 다 알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공부하고 노력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이라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컨비니언스라는 IT 서비스 회사를 통해 콘돔 사업에도 나섰다. 색다른 시도다. 컨비니언스는 진주햄의 관계사로, 콘텐츠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IT 융합 기업이다. 콘돔 사업은 박 부사장의 중학교 친구인 박서원 빅앤트인터내셔널 대표(오리콤 CCO)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박 대표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콘돔을 판매해 얻은 수익을 미혼모나 고아 등을 위한 시설에 기부하고 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꿔 보겠다는 취지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콘돔 이름은 ‘바른생각’이다. 이번 사업에서 박 부사장은 온·오프라인 유통을 책임진다.
수제 맥주·콘돔·한류 사업 진출
박 부사장은 컨비니언스를 통해 ‘글로벌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한류’에 힘입어 시작된 이 사업은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다양한 먹을거리 또는 콘텐츠 등을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IT와 상품을 융합한’ 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 첫째 프로젝트로 지난해 중국으로 수출되는 진주햄의 천하장사 소시지에 자사 서비스를 적용해 ‘정품 인증’ 및 ‘한류 콘텐츠 감상’이 가능한 모바일 웹서비스 ‘빠오리베이 플레이’를 운영하고 있다.
형제가 경영에 참여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회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두 형제의 행보는 식품 업계에서 매번 관심거리가 됐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10년 당시 오너인 부친이 타계한 후 매출이 급감했다. 유일한 오너 경영인이던 박 부사장이 홀로 위기를 감내해야 했다. 이때 박 사장은 동생 박 부사장에게 ‘자신이 경영에 합류해야 하나’ 의견을 물었지만 박 부사장의 대답은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떨어진 회사 매출을 다시 1000억 원대로 올려놓을 때까지 믿고 지켜봐 달라는 것이었다. 어려운 위기를 스스로 헤쳐 나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는 박 부사장의 의지가 드러난다. 그리고 2013년, 박 부사장은 결국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했다. 박 사장이 진주햄에 합류하게 된 뒷이야기다.
정 CMO는 “‘진주햄’ 하면 기업 이름은 알지만 정작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이게 우리의 숙제다. 두 대표는 변화를 통해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알리는 시도를 하는 중”이라며 “품질·가격·이미지 등 핵심 요소를 놓치지 않고 챙긴다”고 말했다.
회사의 변화는 비단 이들만의 노력은 아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든든한 동료며 지원군이다. 진주햄 전 직원 800여 명 중 내근직은 150명, 이들 50%가 20~30대다. 정 CMO는 “젊은 인재들이 모여 기업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며 “회사 내부에서는 진주햄을 ‘식품 벤처기업’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돋보기 박경진 부사장의 화려한 인맥
박경진 부사장의 화려한 인맥이 눈길을 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서원 빅앤트인터내셔널 대표와 중학교 동창인 박 부사장은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 친구들(이하 YFM:Young Friends of the Museum)’ 멤버다. 국내 예술 단체의 젊은 후원인 모임으로 잘 알려진 이곳은 재계 2, 3세 혹은 투자 업계나 벤처기업인 등이 주축이 돼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해 문화예술을 익히고 또 사회 공헌을 한다. YFM에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윤석민 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 홍정욱 (주)헤럴드 회장, 현지호 화승그룹 부회장, 김성완 스무디킹 CEO 등 8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