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미디어]문화 후원 전면 나서는 젊은 기업인들…한국의 메디치 꿈꾸는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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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YFM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문화재
공부는 물론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매경DB>
한다며 깜짝 회식도 열어주곤 한답니다. 고생하지 않고 해외 공연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젊은 후원자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때로는 언니 오빠처럼,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가처럼 저희 연주를 관람하고 가감 없이 얘기해주는 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연주 끝나고 관객 반응이 제일 궁금한데 그게 사실 연주자가 물어보기 민망하거든요. 특히 해외 공연 때 원정 응원까지 와주는
걸 보노라면 정말 힘이 된다 싶어요.” (정수진 세종솔로이스츠 첼리스트)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문화예술계 역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온기를 불어넣는 이들이 있으니 각 단체별 젊은 후원자들이다. 재계 2~3세 혹은 투자업계나 벤처기업인 등이 주축이 돼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해 문화예술을 익히고 또 사회공헌을 습관화한다는 게 특징이다.
국내 예술단체의 젊은 후원인 모임으로 잘 알려진 곳은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 친구들(이하 YFM, Young Friends of the Museum)’ ‘국립발레단 후원회 KNB
펠로우(Fellows)’ ‘서울시향 후원회 SPO패트론(Patrons)’ ‘세종솔로이스츠 주니어보드’ ‘뷰티플마인드채리티’ 등이 있다.
한국메세나협회도 점점 젊은 CEO들 후원 열기가 일어나고 있고 아름지기재단도 홍정현 온지음 기획위원(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외동딸)을 주축으로
최근 가칭 영아름지기란 모임으로 본격 활동을 계획 중이다. 이 중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회 YFM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편이다. 2008년 결성된
이 모임은 단순히 공연을 즐기고 단원들과 교류하는 수준을 넘어 정기적인 박물관 유물 공부모임, 후원금 모금을 위한 연말 연주회 등을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회원들의 참석률이나 후원 사업 모금액 등이 여타 모임에 비해 높다고 정평이 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YFM이 주도적으로 3억원을 조성해 금관, 불교조각, 반가사유상 등이 있는 전시관을 네덜란드 뮤지엄 전시 전문업체를 불러 세계적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했다. 2009년에는 박물관 내 명소인 청자기와 건물 ‘청자정(靑瓷亭)’을 기증했다”고 활동상을 소개한다.
YFM은
허명수 GS건설 부회장을 주축으로 윤석민 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 홍정욱 헤럴드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현지호 화승 부회장, 김성완
스무디즈코리아 대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최정훈 대보건설 이사, 박경진 진주햄 대표 등 8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2월 중 총회를 열어 1년 계획을 공유하고 국내 특정 지역을 답사하며 현장 공부를 하는가 하면 각 지역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초청, 박물관 투어 행사를 직접 진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이들은 박물관 공부에도 열심이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다양한
박물관을 투어하고 특정 분야에 대해 2~3시간 정도 학술 교육을 받는다. 연말엔 유명 가수와 뮤지컬, 오페라 배우 등이 재능 기부 형태로 참여한
공연이나 자선음악회를 통해 성금을 모으고 이 돈으로 박물관 주요 사업을 돕곤 한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박물관회연맹(WFFM) 이사회·총회
때도 YFM 회원들이 발 벗고 나서 도왔다.
국립발레단 후원회인 KNB 펠로우도 활발한 활동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발레단원들의
해외 공연 지원은 물론 단원들과의 대화, 연말 공연 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단원들 토슈즈를 지원하는 건 물론 스태프에게까지 의상
협찬, 간식 제공 등 서포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KNB 펠로우는 장세욱 유니온스틸 사장이 후원회장을 하는 가운데 김영목
한국도자기리빙 대표, 김재훈 영풍제약 이사, 김정주 NXC 대표, 박진원 두산 사장, 이건훈 한국제분 상무, 이재욱 대주기공 사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허인영 승산 대표,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 등이 주요 멤버로 활동 중이다.
KNB 펠로우 이름에 올라 있진
않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국립발레단의 열렬한 지지자다. 원래도 예술 작품 관람을 즐겨 하는 스타일이지만 딸이 국립발레단 부설
발레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부쩍 국립발레단을 살피는 일이 잦아졌다. 2012년 호두까기인형 공연 때는 딸이 직접 출연해 이 부회장을 즐겁게 했고
지난해에도 딸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며 전 단원들에게 의상을 깜짝 선물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시향 SPO패트론에도
비슷한 이름들이 보인다. 앞서 소개한 모임 회원에도 이름을 올린 박진원 사장은 서울시향에선 후원회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허인영 대표,
정용진 부회장, 이해욱 부회장, 이우현 OCI 사장, 오치훈 대한제강 사장 등도 서울시향 후원에 열심이다.
서울시향은 정명훈
예술감독 부임(2005년) 이후 젊은 기업인들 위주로 후원회원이 결성되기 시작해 매년 인원이 늘고 있다. 현재 약 4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오케스트라 파트별 단원들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들은 또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으로 고가의 악기 대여에 드는
비용을 대는가 하면 연주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의자를 모두 프랑스산으로 바꿔주는 등 단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활동들에
주안점을 둔다.
세종솔로이스츠 주니어보드는 비교적 최근에 활동을 시작한 모임이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이희정, 이진영(존 킴
앰코테크놀로지 전무 아내) 씨가 공동 회장을 맡으며 결성했는데 구진희 갤러리KOO 대표(구자홍 LS미래원 회장 장녀),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류재욱 네모파트너즈 총괄사장,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구본무 LG그룹 회장 사위), 윤성철 PIA 대표, 이수경 보고파워 대표, 이한조
유닉스전자 사장 부부, 이우영 서울대 교수, 이준현 금융기계 전무, 조나단 리 WPP코리아 이사 등이 회원 명부에 올라 있다.
이재용 부회장, 국립발레단 골수팬
세종솔로이스츠 주니어보드도 적극적인 후원에 뒤지지 않는다.
세종솔로이스츠는 1995년 강효 미국 줄리어드 음대 교수가 다국적 젊은 연주자들의 공연 기회를 넓히고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실현해보려 만든
현악 오케스트라. 비올라 연주자인 리처드 용재 오닐도 세종솔로이스츠 출신이다.
세종솔로이스츠 주니어보드 회원들은 해외 공연 때마다
연주자들을 위한 해외 숙소 섭외, 현지 고가 악기 지원, 원정 응원 등 일종의 비서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열성이다.
이진영
회장은 “후원의 밤 형식의 세종솔로이스츠 특별 음악회를 만들어 관현악, 실내악에 익숙지 않은 젊은 기업인들과 소통하며 문화예술 지원이 주는
남다른 의미를 직접 느끼게 하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특히 금융권, 벤처 분야 기업인들이 아주 만족해하며 적극 호응했다. 이후 모임이 전격적으로
활성화됐다”고 소개했다.
한국메세나협회도 요즘은 ‘젊은 피’가 전면에 나서는 형국이다. 정용진 부회장, 조현준 효성 사장, 김종원
우진건설 대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김선화 영앤잎섬 대표, 김진석 클라우드나인마케팅 대표, 정승우 유중아트센터 이사장, 황세동 법률사무소
C&B 변호사 등이 3040 멤버들의 주축이 돼 찾아가는 문화행사, 소외계층의 예술 교육 등에 힘쓰고 있다.
이병권
한국메세나협회 사무처장은 “르네상스를 일으킨 피렌체 메디치가는 조반니를 시작으로 코시모, 비에리, 로렌초를 이어가며 350년 동안 지속적으로
문화예술을 후원해 메세나의 본산지가 됐다. 우리나라 문화 융성을 위해서는 창업주의 2세, 3세인 30~40대 오너들이 팔을 걷어야 한다.
문화예술의 수혜를 입고 성장한 그들이야말로 우리 문화를 본격적으로 융성시키고, 기업의 품격을 높이며, 우리나라 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끌어갈
최적임자”라고 치켜세웠다.
젊은 후원자들이 늘어나는 건 박수 받아야 할 일이지만, 문화계 일각에선 아쉽다는 평가도 일부 나온다.
후원 분야가 국립박물관을 제외하면 서양예술 쪽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 가장 먼저 대두된다.
이양희 국립극장 공연기획팀장은 “메세나
활동이 기업인 중심으로 활발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발레나 서양음악 등에 편중된 활동을 하는 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젊은
CEO들이 전통예술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저변이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입회가 자유롭다고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란 따가운 시선도 있다. 모 벤처기업 대표는 “모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려 했더니 후원금 액수도 중요하지만 전 회원들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며 기다려 보라는 식으로 나와서 후원하려는 마음이 싹 달아났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48호(03.12~03.18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