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박물관에 공부만 하러 오나요?…즐길거리가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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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9 21:35:05 / 수정: 2014-05-30 02:39:44
만남]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박물관에 공부만 하러 오나요?…즐길거리가 있어야죠\"
관람객들 매력 없으면 안와요…\'즐기는 박물관\' 만드는 게
꿈
세계적 박물관 되려면…
신라 국보 뉴욕 전시회도 큰 성과…문화재 손상만 걱정해선 교류 못해
중요하지요. 하지만 모든 공간에 소장품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을까요. 요즘 박물관은 매력이 있어야 해요. 어떻게 공부만 하러 오나요. 세계적
박물관이 되려면 국제교류도 꼭 필요해요. 문화재 손상 걱정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인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찾는 사람이 많다. 지난 3일부터 시작된 파리 오르세미술관 특별전 덕분이다.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이후 등장한 미술가들과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엔 모네, 반 고흐, 고갱 등을 비롯한 회화 명품과 조각, 공예, 사진 등 175점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파리에서만 볼 수 있었던 명작들이 한국에 전시되면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5만600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20~30대 젊은
관람객 비율이 높다.
박물관에 이 같은 미술전시회를 기획한 이가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63)이다. 김 관장은 주변으로부터 ‘굳이
국립박물관에서 외국 미술관 작품을 전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시 시작 후 ‘국내에서 보기 힘든 명작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박물관 변화를 이끌고 있는 그의 삶과 철학을 들었다.
김 관장이 고른 맛있는 만남의 장소는
중앙박물관 안에 있는 퓨전 한식당 ‘마루’다. 이곳은 김 관장이 중요한 손님을 접대할 때 항상 이용하는 곳이다. 오르세미술관전을 열기 위해
방한한 기 코즈발 오르세미술관장도 이곳에서 밥을 먹었다. 3년 전엔 평범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지만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입점한 뒤 한정식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연못가에 자리잡은 마루에 들어서자 김 관장은 한화가 조달청 입찰 가격보다 돈을 더 들여 인테리어와 식기 등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소개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박물관 레스토랑답게 분위기가 차분했다. 테이블 사이 간격이 넓어 옆자리 대화에
방해받지 않는 여유와 품격도 느껴졌다. 김 관장은 “박물관에는 대표 식당인 마루뿐 아니라 가볍게 식사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와 떡볶이 같은 분식을
먹을 수 있는 곳도 있다”며 “누구나 찾기 편한 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자랑했다.
주문한 음식은 호박죽과 너비아니 등이 나오는
점심코스 백자 상차림.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김 관장은 자신의 유학 시절 식사 얘기를 꺼냈다. 오랜 미국 유학 기간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세
끼니를 모두 챙겨 먹었다는 그는 “‘아프면 간호해 줄 사람이 없으니 아파서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먹었다”며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때만
되면 식탁에 음식이 차려진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달지 않고 적당한 끈기를 지닌 호박죽과 물김치가 전채요리로
나왔다. 김 관장은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아버지 고 김재원 박사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인재를
찾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어요. 그게 자녀 교육에도 영향을 미쳐서 첫째 언니는 동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둘째 언니는 의사가
됐지요. 아버지가 미국 켄터키주 뮬렌버그대 초빙교수로 부임하셨을 때 제가 함께 따라갔는데 그때만 해도 기자가 되고 싶었지요. 사회학도 배우고
미술사도 배웠는데 미술사를 하다 보니 재미를 느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가 8년간의 미국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것은
1980년. 당시 스물 아홉살에 덕성여대 교수로 부임했고, 1995년부터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참나물, 돌나물, 양파가 섞인 산나물 샐러드와 수삼 냉채가 차례로 나왔다. “서양미술사 전공자로서 국립중앙박물관장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가”라고 물었다. 취임 당시 “박물관 운영과 전공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던 김 관장은 이제야 뒷이야기를 꺼냈다.
“박사학위는
서양미술사로 취득했지만 25년 전부터 제가 쓴 논문은 대부분 한국 근·현대미술을 다루고 있어요. 학위가 서양미술사니까 변명하는 것 같아 이런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았는데, 요즘에 쓰는 글이나 책은 다 우리 것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동·서양 미술사를 아우르는 그가 본
한국과 서양의 미술 차이는 무엇일까. 김 관장은 “서양 미술은 생동감이나 색채감이 있고, 한국 미술은 은은하고 서서히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청주 소스를 곁들인 가자미 구이와 특선 요리인 너비아니 구이가 나왔다. 청주와 된장으로 만든 소스는 생선 요리와 궁합이
잘 맞았고, 으깬 감자와 잣가루가 곁들여진 너비아니는 외국인들이 한식을 접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김 관장은 “건강을 신경 써야 하지만 유학
시절부터 고기를 좋아하고 있다”며 “외국 손님들에게도 너비아니를 많이 권한다”고 말했다. “너비아니에 으깬 감자가 함께 나오는 이유는 단백질
분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가 박물관 운영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분야 중 하나가 문화 교류다.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린 신라 특별전은 현지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당시 전시됐던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문화재
안전을 이유로 국외 전시에 대한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김 관장은 “문화재를 싣고 가는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는 이상 손상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손상 걱정만 하면 서로 교류를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한국실이 있는 외국박물관들과 문화재 교류를 한 덕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국제적 박물관이 됐다고 자부했다.
오르세미술관 전시회도 김 관장이 구상하고 있는 세계적 박물관 구상과 연결돼 있다.
박물관에서 미술전을, 그것도 무료로 입장하는 국립박물관에 유료 전시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 관장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구분하는 것은 동아시아에만 있는 개념이라고 반박했다.
“박물관이란 이름 안에 갇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두부 자르듯 구분되는
것이 아니니 연결해야죠. 유명 작가와 그 작품만 보는 전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작품들이 나오게 된 문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박물관은 연구가 기본적인 기능이지만 많은 관람객이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취임 후 3년
동안 전시실의 디자인을 바꾸고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다가 다리가 아플 때 쉴 자리도 만들었다. 그는 “모든 공간에 소장품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며 “관람객들이 공부만 하러 오는 게 아니라서 박물관에 여러 가지 매력을 더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8년부터
무료입장으로 바뀌면서 관람객이 매년 늘었다. ‘조선왕조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이 열린 2011년에 324만명을 기록하는 등 매년 300만명을
넘고 있다.
김 관장은 국가에서 모든 문화재를 구입해줄 수 없는 점을 이해한다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립박물관이 사용할 수
있는 문화재 구입 예산은 28억8000여만원. 해외 경매에 나온 우리 문화재 한 점 사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다. “국내 전시를 하기 위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문화재를 빌려 오려면, 보험과 운송료 등을 포함해 5000만원 정도가 들어요. 그러니 이걸 꼭 해야 하느냐는 말이
나오죠. 예산 가운데 중앙박물관 문화재 구입은 이만하면 된 것 같고, 대신 지방 12개 국립박물관은 지역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는 중앙박물관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지목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너무 복잡해 정신없다는 김
관장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학술적 전시 수준과 대중성을 함께 갖췄다며 높이 평가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외에도 김 관장이 미국
박물관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더 있다. 다양하고 활발한 ‘기부 문화’다. “록펠러 가문은 자신들의 돈과 작품을 선뜻 기부했어요. 이 사람들이
록펠러 미술관을 꾸려도 충분히 잘할 수 있을 정도인데도요. 그런데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문화는 참 훌륭하죠. 여기에 미국은 기증할 때 세제
혜택을 주는데 한국은 외국보다 그 혜택이 적습니다. 물론 우리도 4000~5000점의 유물에다 기금까지 후원해 주신 동원 이홍근 선생님 같은
분도 계시죠.”
국립중앙박물관도 후원회가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박물관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박물관회 속 젊은 경영인 모임인 YFM(Young Friends of the Museum) 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관장은 이들의 후원이 큰
힘이 된다며 고마워했다.
오미자차를 마지막으로 식사를 마친 뒤 공원처럼 널찍한 박물관 앞뜰로 나오니 견학 나온 중학생들이 줄지어
활짝 웃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박물관 입구로 이어진 통로 주변에선 연못과 박물관 건물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젊은 남녀
관람객들이 종종 보였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예술이 숨쉬는 시민들의 휴식처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故 김재원 박사 이은 ‘부녀 박물관장’ 화제
김영나 관장은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인
고 김재원 박사(1909~1990)의 1남3녀 중 막내딸로 2011년 취임 당시 ‘부녀 박물관장’으로 화제를 모았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언니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72)도 한국 불교미술의 권위자로 명실상부한 예술 가족이다. 김 관장은 “동양 미술에 관해 궁금증이 있을
때는 언니와 토론한다”며 돈독한 가족애를 자랑했다.
김영나
관장의 단골집 \'마루\'
쿠웨이트 왕족 입맛도 사로잡은 한정식
\'일품\'
퓨전 한식당
마루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입구 연못 끝에 자리잡고 있다.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난해 이슬람 특별전을 했을 때 10여명의 쿠웨이트
왕실 사람들과 함께 마루에서 식사를 했는데 식성이 까다로울 것 같은 왕족들도 편하게 밥을 먹었다”며 “호박죽을 보더니 카푸치노 같다며
좋아했다”고 소개했다.
코스는 마루, 은관, 금관, 천마로 구분된다. 이름은 국립중앙박물관 기부회원 등급에서 따왔다. 김 관장과 함께 먹은 백자
코스(3만7000원)보다 한 등급 높은 청자 코스(4만7000원)엔 계절쌈밥과 한방갈비찜 등이 추가된다. 저녁 코스도 3만8000원(마루)에서
9만원(천마)까지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메뉴별로 구절판과 신선로 등 특색 있는 요리가 나온다. 돌잔치와 상견례 상차림도 4만5000원에서
6만5000원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오후 3시, 오후 5~9시다. 월요일은 쉰다.
(02)796-1875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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