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박물관은 일종의 연구기관… 공부해야 전시 質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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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 “박물관은 일종의 연구기관… 공부해야 전시 質 높아져” |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
“국가 예산만으론 유물 확보 한계… 개인기증 많아져야” 김영나(63)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계 여성 파워의 대표적 인물이다. 나선화 문화재청장,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등과 함께 ‘여성 시대’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11년 관장에 취임한 이후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변화를 꾸준히 추진해 온 그는 여성 리더십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칭찬 쪽에 비중이 실린 평인데, 그는 손사래를 쳤다. “일하면서 ‘여성 관장’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미국에 유학해 미술사를 공부할 때나,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여성이라는 것을 의식한 적이 없다. 주변에서 자꾸 ‘여성’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것이 불만이다.” 이 말만 들으면, 그가 목소리 큰 중성적 이미지의 ‘여걸’일 듯싶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단아한 체구에 차분한 말투를 지녔다. 박물관에 대해 설명할 때는 매우 진지했으나, 그 밖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자주 서그럽게 웃어서 상대방을 편하게 만들었다. 그는 ‘최초의 부녀(父女) 관장’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아버지인 김재원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뒤를 이어 관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문화예술품을 다양하게 접하며 안목을 키웠던 것을 스스로 큰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덕수궁 석조전에 국립박물관이 있을 때, 그는 덕수궁 연못에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가 아버지가 관장으로 있는 박물관 내부를 들여다보곤 했단다. 그의 큰언니는 불교미술사의 권위자인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로, 2007년엔 자매가 나란히 문화재위원이 돼 역시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김 관장은 취임 이후 국내 문화예술품의 해외 전시와 외국 작품의 국내 전시에 적극성을 보였다. 그런 기획은 큰 성공을 거뒀으나, 추진 과정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논란이 되곤 했다. 미국 뉴욕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 ‘황금의 나라, 신라’(2013년 10월 29일∼2014년 2월 23일)가 대표적이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국외 반출을 두고 국내에서 반대 여론이 일었으나, 그것을 이겨내고 강행한 전시회에 관람객 20여 만 명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르세미술관전-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5월 3일∼8월 31일)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파리의 세계적 미술관인 오르세가 아끼는 미술품을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는가 하면, 박물관이 굳이 미술 전시회를 열어서 대중을 상대로 ‘장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도 있다. 지난 12일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김 관장을 만났을 때 우선 오르세미술관전에 대해 물었다. ―오르세전은 클로드 모네의 ‘양산 쓴 여인’ 등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작품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전시 유치와 큐레이팅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해외 미술관에서 우리에게 전시품목 리스트를 보내 오면, 우리가 그보다 더 높은 급의 작품들로 대체해 달라는 등으로 수정해서 회신한다. 당연하겠지만 애초에 해외 미술관과 박물관이 ‘최고급’을 보내주지는 않는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해외 박물관에서 전시할 때, 우리가 도저히 보내줄 수 없는 국보급만 골라서 신청하는 곳들이 있다. 그런 리스트를 받으면 막 웃곤 한다. 그 나라 문화유산의 ‘정수’를 보고 싶은 마음은 똑같지 않겠나. 그러다보니 조정이 필요하다. 이번 오르세전은 그 과정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해외 유명 미술관을 끌어들여 전시를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더라. 대중적인 작품들만 모았다며 ‘상업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상업적이라는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다. 국내에서는 인상주의 전시를 하면 상업적이라고 하는데…. 박물관 전시는 컨텍스트(context), 즉 문맥이 관건이다. 이번 전시는 ‘근대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을 새로운 주제로 삼았다.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게 한 문맥을 관람객들이 파악할 수 있도록 의도했다. 상업적이기보다 오히려 학술적인 거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 전시는 인상주의 이후를 보여준다. 서양미술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시기다. 파리가 미술의 중심인 가장 마지막 단계로,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때다. 그 이후엔 현대미술의 중심이 파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 시기는 한국이 일본을 통해 서양미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친숙하다. 또 후기 인상주의 작품들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인상주의 작품을 전시하면 상업적이라고 하는데, 그런 걸로 말한다면 일본이 더할 거다. 일본에선 ‘르누아르’만 갖다 붙여도 장사가 된다고 할 정도다.” (그는 전시회에 대한 비판 자체보다는 ‘상업적’이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전시회 의미를 길게 설명한 후 “우리가 돈을 벌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기 코즈발 오르세미술관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와보고 규모가 커서 놀랐다던데. (국립중앙박물관은 미군기지 이전 부지에 조성된 용산공원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경복궁에 있다가 지난 2005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대지면적 29만5550㎡, 건축면적 4만9468㎡에 지하 1층, 지상 6층 건물의 위용을 자랑한다.) “해외 미술관 관계자들이 오면 다들 놀란다. 한국에 10만 평 규모로 이렇게 큰 박물관이 있으리라는 상상을 못한다. 해외 각지의 미술관들이 여기서 전시를 하고 싶어한다. 해외 유명 미술관들은 대부분 작은 편이다. (우리가) 아시아에서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일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소장 유물은 일본이 더 많지만 일반인을 위한 박물관의 역할에 있어선 우리보다 보수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예산이 우리보다 적다. 일본은 디자인이 굉장히 발달한 나라지만 대부분 1970년대에 지어져서 시설이나 관람객 규모 등에서 우리가 앞선다. 요즘 중국은 새로운 미술관을 자꾸 짓는데, 벤치마킹 대상이 바로 우리다. 디스플레이, 교육프로그램, 언론과의 관계 등. 얼마 전 중국 문화부 차관이 방문했는데 특히 그런 부분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더라.” ―관람객 규모면에서 세계 10위권이라고 하던데.(국립중앙박물관은 2012년에 누적관람객 2000만 명을 돌파했다.) “10여 년 전에 비하면 요즘 우리 국민들의 문화 욕구가 굉장하다. 휴가철엔 하루에 3만여 명이 몰린다. 박물관에서 강연을 하면 꽉꽉 들어찬다. 전문가, 일반인, 다문화 가정 등 대상도 다양하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건 어린이박물관이다. 올해 60만∼70만 명까지 관람할 것 같다. 우리 박물관은 용산 이전 후 발전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공간이 넓어졌고, 전시품 순환도 활발하다. 어린이박물관과 연계한 소풍 등 친밀감을 높이는 기능은 해외 다른 박물관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이날 전시관들을 함께 둘러보며 직접 안내했다. “세련된 디스플레이는 유물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취임해서 보니 그런 게 많이 부족해 보이더라.” 그는 관람객이 문화 유물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시 디자인을 새로 짜고 관람객 휴게 공간을 만든 것에 대해 세세히 설명했다. 청자실(靑瓷室)에서는 조명 위치와 색감 등을 바꾼 것을 자랑했다. “여기 전구 하나가 100만 원이다. 바꾸려면 모든 게 돈이다. 조금씩 개선해나가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박동미 기자가 “프랑스에서 유물과 현대미술품을 한자리에 놓은 전시회를 봤는데, 참 신선하더라”고 하자, 그는 “나도 하고 싶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미술 전시를 하느냐고 비판하는데, 그렇게 섞으면 뭐라고 하겠나. 앞으로 5년 정도 지나면 우리도 그런 작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고 답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해외 전문가들의 발언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 분명한 거 같다. 역설적으로, 국내 지방 박물관들은 중앙과의 규모와 질 차이가 너무 크다며 볼멘소리를 하는데. “외부에선 우리가 소장품이 많다고 생각을 하는데, ‘전시용’ 소장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는 유물 33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 연구자료로서 가치가 있고 또 보존을 위한 것들이 많다. 시각적으로 감동을 줄 만한 건 별로 없다. 고서만 전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현재 전시 중인 게 1만8000점이다. 회화는 3개월마다 교체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많지 않다. 또 12개 지방국립박물관에도 나눠줘야 한다. 솔직히 다른 곳(지역 중소박물관)까지 챙길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메트로폴리탄 전시 때 (논란에도 불구하고) 반가사유상을 꼭 보내야만 했던 것도 수준 높은 소장품 부족 때문이다.” ―메트로폴리탄 전시에서 반가사유상이 단연 화제였지만, 국보도 보물도 아닌 철조여래좌상이 큰 주목을 받은 게 흥미롭다. “본래 우리 박물관 불교전시실 구석에 있던 거다. 그런데 뉴욕에서 보석처럼 빛났다.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 단독 전시할 예정이다. 난 주목받지 못했던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걸 좋아한다. ‘명품’이란 말 자체를 싫어한다. 너무 유명한 작품만 강조하는 건 의미가 없다. 시대에 따라 유물을 보는 눈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일반인들도 박물관에 자주 오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처음엔 빗살무늬 토기 등 학교에서 배운 것에 관심을 두고, 다음에 국보를 보러오고, 그러다보면 교과서적인 것을 벗어나게 된다. 새로운 걸 발견한다.” ―해외교류 전시가 용산 이전 후, 특히 김 관장 취임 후 더 활성화된 듯싶다. “한류와 함께 국내 기업들의 선전이 크게 기여했다. 우리와 일하려는 해외 박물관의 수가 정말로 확 늘었다. 이런 흐름을 타고, 할 수 있는 건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1957년에 해외에서 첫 국보전시회를 한 후 지금까지 크고 작은 전시를 100여 건 했다. 하지만 뉴욕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최고의 박물관에서 신청이 들어오게 된 건 얼마 안 됐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전시를 좌우한다. (구미에서 볼 때) 중국은 아직 여러 여건이 미흡하고, 일본은 너무 많이 해서 다들 잘 안다고 여긴다. 그런 와중에 한국이 ‘새로운 아시아’로 떠오르는 것 같다.” 김 관장은 “국내 문화예술 연구자들이 영어로 논문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했다. 우리 것의 진짜 가치를 외국서 주목하게 하려면 영어로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언제 한국어를 배워서 우리 것의 가치를 알겠나. 영어로 쉽게 설명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제학술회의 등에서 외국 연구자가 우리 것을 잘못 이해해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그에 대해 반박할 정도의 실력은 있어야 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비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준은 어느 지점쯤 왔다고 보나. “음,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준이 우리 국력보다 낮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장품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국가 예산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개인들의 기증이 더 많아져야 할 것 같다. 며칠 전 어느 자리에서 록펠러에 대해 강의를 하기도 했지만, 록펠러 1세부터 4세까지 컬렉션이 있다. 하지만 록펠러 미술관, 박물관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다 기존 박물관에 기증했다. 아시아소사이어티, 모마(Moma) 등. 해외 유수의 박물관들이 독지가의 기증에 힘입어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기관장의 중요 임무 중 하나가 예산을 얻어내는 일일 텐데. “그렇다. 용산으로 이전할 당시 연 유물구입비가 70억 원까지 올랐다가 계속 떨어져서 지금은 30억 원이 안 된다. 좋은 도자기 하나가 50억 원씩도 하니 턱없이 부족하다. ‘신라’전을 했던 메트로폴리탄의 경우는 구입비가 우리의 30배가 넘는 걸로 안다. 이전 당시 구입비가 오른 건 아시아부 신설 때문이다. 세계적인 박물관이 되려면 한국 것만 갖고는 안 된다고 판단해 아시아부를 만들었고, 당연히 유물 구입비가 필요했다.” ―메트로폴리탄 전시회 때 반가사유상 반출 문제로 문화재청과 불협화음이 있었다. 요즘은 소통이 잘 되나. “기관에 따라 조금씩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당시 나로서는 이왕 하는 전시, 정말 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요즘 서로 큰 문제는 없다. 여러 사안에 있어서 협조가 잘 이뤄진다.” ―국립중앙박물관후원회가 있던데, 어떤 역할을 하나. “40년을 이어 온 ‘박물관회’가 큰 도움이 된다. 박물관을 사랑하고 후원하는 분들로 이뤄진 모임인데, 김정태 하나은행 회장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중 YFM(Young Friends of the Museum)이라는 젊은 경영인들의 모임도 있는데, 현재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수장이다. 불교조각실, 반가사유상실, 금관실 등의 공간을 네덜란드 뮤지엄 전시 전문가들 불러다 리뉴얼할 때 YFM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취임 3년이 넘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계 10위권이니, 관람객 숫자니 그런 형식적인 계획 말고 질적인 면에서 좀 더 글로벌한 관점을 갖고 나아가고 싶다. 박물관은 일종의 연구기관이기도 하다. 연구를 잘해서 전시로 그 힘이 융합되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유물을 보내면 전시를 참 잘하더라. 최고의 작품을 보내도 안심이 되더라, 하는 나라로 인식시켜야 한다. 그렇게 전시의 질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연구, 공부하는 박물관이 돼야 한다. 세련된 전시 디자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케브랑리 박물관장이 와서 칭찬했을 만큼 우리 박물관의 전시 디자인이 많이 개선됐지만, 더 보강하고 싶다. 전시는 학예사와 디자이너가 함께 작업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친 후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그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깔깔 웃었다. 그는 “교수 때와는 달리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실현하는 일을 하니 보람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가 현재의 일을 참으로 즐기는 듯해서 관장 이후의 꿈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인터뷰=장재선 문화부장 jeijei@munhwa.com 정리 =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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