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영](cover story) 나의 문화유산 수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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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나의 문화유산 수집기(2019. 11.23 개재)
표 지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space*c 설립자
대 담 김동기 대한민국학술원 회장·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일 정 2019년 10월 2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space*c 오후 2시
나의 문화유산 수집기
① 모으고 ② 나누고 ③ 모시고 ④ 배우고 ⑤ 기르고
⑥ 이루고 ⑦ 다니고 ⑧ 펼치고 ⑨ 남기고 ⑩ 바치고
임술(1082년) 가을 기망(旣望: 음력 16일), 달 밝은 밤 소동파(蘇東坡)가 손님과
함께 배를 띄워 적벽강에서 노닐 때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 적벽부에서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 泛舟遊於 赤壁之下 淸風徐來. – 赤壁賦에서
임술지추 칠월기망 소자여객 범주유어 적벽지하 청풍서래
소동파가 말하기를 “손님은 저 물과 달을 아시는가요? 가는 것 같지만 가지 않고, 차고 비는 것 같지만 줄고 늘어남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 또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나 변치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모두 다함없으니 무엇을 부러워하리오? 천지 사이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갖지 말되, 강가의 맑은 바람과 저 산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 가져도 금(禁)함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없는 갈무리로 우리 모두 함께 누릴 바로다….
소동파 선생이 1082년 적벽강에서 뱃놀이를 하며 손님(與客)과 함께 시대의 우울을 벗 삼아 풍월을 읊듯이, 그로부터 약 1천년이 흐른 2019년 가을, 김동기 박사(대한민국학술원 회장)는,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이 평생 일군 서울 강남의 복합문화공간인 스페이스 씨(space*c)에서 만나, 유 회장의 모으고 나누고 가꾼 이야기를 주제로 운(韻)을 달고 대(對)를 맞추었다.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한 ‘최고경영자’이면서 또한 ‘최고문화경영자’란 평을 받는 유 회장이 평생 문화재와 미술품을 ‘① 모으고 ② 나누고 ③ 모시고 ④ 배우고 ⑤ 기르고 ⑥ 이루고 ⑦ 다니고 ⑧ 펼치고 ⑨ 남기고 ⑩ 바치고’ 쌓아온 ‘수집기’를 특종기사로 싣는다. 유상옥 회장과의 대담은 같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의 선후배 사이이면서도 또한 오늘날에는 막역한 친구로 지내는 김동기 박사가 맡아주셨다. 우리나라 경영학자 최초로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에 취임한 김동기 박사와 우리나라 CEO 최초로 ‘최고문화경영자’라는 타이틀을 받은 유상옥 회장의 오늘 ‘특종’ 대담이 아무쪼록 최근의 우울한 경제상황에서 일시적이나마 벗어나게 하는 시원한 기사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유상옥 회장의 집안에는, 조선 후기 의병장 최익현(崔益鉉) 선생과 의병 이칙(李”�) 선생의 학맥을 잇는, 유 회장의 조부 순재공(純齋公)이 친필로 쓴 ‘적벽부’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모으고
김동기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코리아나 화장박물관과 코리아나미술관을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space*c에 특별 초청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나라 기업가로서는 가장 많은 책을 펴내신 유 회장님께서 이번에 열 번째 책으로 ‘모으고 나누고 가꾸고’라는 이쁜 책을 펴내셨는데요. 기업 경영 중에도 문화재와 미술품들을 모으고, 나누고, 가꾸신 이야기를 담담하게 쓰셨더군요. 특히 “물기物氣를 드높이고 문기도 함께 높이기를 바란다”며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자주 방문해서 문물을 가까이하라”고 당부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기(物氣)보다 문기(文氣)의 삶을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 저 역시 오늘 한국 경영학의 개척자이시며, 또한 고려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제 스승이시며, 또한 한국 경영학자 최초로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에 선임되신 김동기 회장님을 제가 운영하는 space*c에 모시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 저도 곧 미수를 맞이하게 될 나이가 되었습니다만 지금도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번에 열 번째 책을 펴낼 수 있었던 것은 코리아나 화장품 창업 초기를 함께 보냈던 나의 동지들, 소비자 분들 그리고 우리 코리아나의 식구 모두들에게 제가 평생에 걸쳐 모으고, 나누고, 가꾸어온 문화재와 미술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발간한 것입니다. 물을 드높이고 문도 높이라는 말은, 결국 문물을 동시에 배우자는 것입니다.
김 회장 회장님께서는 언제부터 미술품 등을 모으셨습니까.
유 회장 제가 미술품 수집을 취미로 삼은 것은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던 197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이미 풍부한 이성을 가지셨으니 감성을 기르시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어떤 분의 권고를 들었습니다. 이를 불어넣기 위해선 인사동에 나가서 그림을 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인사동 화랑가에서 만난 첫 번째 작품이 소정 변관식의 산수화였습니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어린 시절 내 고향 청양에서 고추 심으며 자라던, 그리고 마을 뒷동산에서 진달래를 꺾던 추억을 되살렸습니다. 1970년대 후반엔 직장이 제약회사에서 화장품회사로 바뀌면서 청자유병, 백자 분항아리, 고려동경, 비녀, 비치개, 노리개 등 전통 화장도구와 유물 등으로 컬렉션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국보급 미술품인 청자상감모자합도 그 무렵 수집한 것으로, 큰 합 속에 분, 연지, 눈썹 등을 담을 수 있는 여러 개의 작은 합이 다양한 상감기법으로 새겨져 있어 고려시대 여인들의 미적감각을 오늘날에도 느낄 수 있습니다.
1988년 제 나이 55세에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미인도 수집에 나섰죠. 프랑스 파리의 스위스 빌리지에서 조우한 마리 로랑생의 여인 이미지, 루브르박물관 옆 루브르 앤틱 상가에서 우연히 사게 된 샤를 고티에의 대리석 조각품 ‘아침’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 마음속 가장 아름다운 여인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 회장 오늘 회장님 초청으로 space*c에서 직접 고티에 작품인 ‘아침’ 조각상을 보노라니 거의 완벽한 ‘실물 여인’을 보는듯한 감동을 자아내는데요. 국내 작가의 작품도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유 회장 국내외 수많은 미인도 가운데 나는 남원 광한루의 춘향사에 모셔진 이당 김은호의 ‘춘향도’에 유독 애착이 갑니다. 녹의홍상에 잘 빗어 내린 검정머리와 단정한 가르마, 해맑은 눈과 고운 피부야말로 한국여인의 품위 있는 미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이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학 같이 키가 크고 인자한 모습의 이당 선생과 화랑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떠오르곤 합니다. 최근에는 이우환의 작품 ‘조응’에 푹 빠져있습니다.
나누고
컬렉션 3대 원칙 – 안목, 열정, 돈
김 회장 회장님의 컬렉션 제1기 ‘모으고’에서, 제2기 ‘나누고’로 넘어가는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유 회장 지난 50년의 세월을 마치 밥을 먹듯이 미술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다보니 어느덧 9천∼1만점 가까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수천 점의 미술품들이 들려주는 수천 가지의 스토리와 그 역사적 가치를 나 혼자만이 소유하기에는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화랑가로부터 ‘유상옥 회장’은 국내 몇 손가락에 드는 수집가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많은 수집품들을 둘러볼 때마다 새삼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곤 합니다.
“과연 이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모아왔는지, 아니면 혹시 돈만으로 내 것을 만들려고 했는지, 나아가서는 남들에게 그 숫자나 종류를 과시하려고 모았던 것은 아닌지…” 하는 나 스스로의 통찰과 반성을 통해 진정한 수집가로서의 자세를 가다듬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인데요. 진정한 수집가 정신이 무엇인가를 늘 환기해보면서, 한 점, 한 점에 대해 편견 없는 애정을 키워가자는 생각, 나아가서 나의 삶도 그같이 충만한 나날이 되게 하자는 마음가짐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종을 수집한 것은 1981년 즈음, 라미화장품의 사장으로 회사를 경영하던 때부터입니다. 회사의 만성적자를 어떻게든 흑자경영으로 반전시켜 보려고 새로운 획기적인 브랜드 명으로 ‘종’의 모양을 따서 만든 ‘라미벨’이라는 상표를 최종 확정지을 때였습니다. 때마침 박사학위 취득과 시장조사 차 미국 출장을 가는 동안 여기저기 백화점 등을 돌아다니며 예쁘고 신기한 종들을 모으기 시작했죠. 결국 새로운 종으로 탄생한 ‘라미벨’은 회사에 행운을 가져왔고, 새로운 브랜드 발매를 통해 매출도 급격히 상승해 만성적자가 흑자로 돌아섰으니, 경영자인 나로서는 ‘라미벨’이 울린 종소리를 행운과 축복의 소리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요. 내가 종을 모은다는 소식이 퍼지자 많은 친구들이 국내외를 여행할 때마다 진귀한 종을 선물해주었고, 그렇게 수집한 세계 각 나라의 종이 어느새 1천여 종으로 불어나 지금은 코리아나 화장품 천안공장 내 송파기술연구원에 진열되어 많은 사람들이 감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수집하기 시작한 벨은 라미벨 TV 광고에서 예쁘게 울리며 사람들에게 각인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화장 관련 유물 200점 기증도
2009년 3월 30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물 기증 및 기부자의 밤’ 행사가 열렸습니다. 1억원 이상 기부자는 백마회원, 5천만원은 금관회원, 3천만원은 은관회원 등으로 명패가 달렸죠. 나는 기증자 목록 제일 위에 오르고 금관회원으로 대우되었습니다. 금관회원으로 대우되기까지 나는 ‘한국박물관회’에 오랫동안 관여하면서 여러 해에 걸친 출연으로 모범을 보인 것이 좋은 평가가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이날 ‘기부자의 밤’ 행사에서 고려, 조선시대의 화장 유물 20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2층 기증문화재실에 전시가 되고 있죠.
또한 2018년 4월 11일에는 코리아나 화장박물관과 코리아나미술관을 운영하는 코리아나 화장품 법인에 제가 소장하고 있던 화장유물 4천800점을 기증하는 조촐한 행사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유물이나 서화의 공공기관 및 개인의 기증사업이 꾸준한 운동으로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기증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오르는 국민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김 회장 회장님은 문화재 수집의 세 가지 노하우로, 첫째 작품을 보는 ‘안목’, 둘째 ‘열정’, 셋째 ‘경제력’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공감이 갑니다.
유 회장 적합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나, 옛 선현들은 “머리가 짧으면 발품을 키우라”고 말했습니다. 제 경우 옛 여인들의 화장유물, 미술품 등을 구하기 위해 주말, 출장길에 시간을 내어 서울 인사동과 장안평, 부산, 광주, 대구는 물론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 발품을 팔다보니 안목이 생겼고,결국 열정이 있어야 구매라는 강력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안목과 열정이 있더라도 돈(경제력)이 뒷받침해주어야지요.
모시고
김 회장 회장님이 최근 내신 수필집 ‘모으고 나누고 가꾸고’를 보면 ‘사대모정’이라는 교훈적인 시가 나오는데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큰 교훈이 되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유 회장 여기서 나의 가족사를 간단히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유학을 근본으로 하고 삼강오륜을 중시하는 가풍에서 성장했습니다. 나의 조부께서는 한학을 익혀 일찍이 서당을 운영하며 면암 최익현 선생의 제자인 애국자 이칙恜선생을 스승으로 모신 ‘골수’ 충청도 양반이셨고, 나의 할머니는 4대 종부이셨습니다. 시부모와 조부모, 조부모의 형제자매, 그리고 그들의 아들과 손자들까지도 모두 챙기는 종부이셨지요. 그리고 증조부모, 고조부모에 이르기까지 종부는 모두 봉사해야 했지요. 주요 가례를 말씀드리면,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는 돌아가신 날에 기제사를 모시고, 추석과 설에는 차례를 모셔야 했습니다.
오늘날 핵가족 시대, ‘1인 가구’ 시대가 등장하는 마당에 종부의 역할을 당부하는 것은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종부가 가문의 가례를 지키는 것은 아름답고 존경스런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우리 할머니의 자랑스런 종부의 역할을 시 한수로 작사하여 우리 가문의 대대손손에게 남기고자 한 것입니다. 한번 읊어볼까요.
사대모정(四代母情)
세상이 바뀌었다
벌써 바뀌었다.
이제 바뀌나
아버지 보내고 30년 더 사신 어머니
시집와서 제사 모시라 애쓴 아내
못 이겨 나가고 힘들어 내어놓은 며느리
80 넘어 사신 할머니
큰아들 둘째 셋째 먼저 보내고
손자 손잡고 외로이 지내신 큰집 종부
아버지 가시고 서러웠던 어머니
궁핍 이겨내며 받들었던 아내
애쓰다 애쓰다 못당한 며느리
아버지 불의로 가신 지 63년
그간 성묘 몇 번 갔었나
가신 뒤 집안 돌보아 온 나
아버지 어머니 세월이 흘렀어요
아내와 며느리들 애썼어요
내 뜻 받아 차례 드린 고마운 아내
– 유상옥 회장 지음, 2017.10.4. 추석날
배우고
김 회장 그 다음, 유상옥 회장님께서 배움을 받은 존경하는 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유 회장 고대에서 민법을 가르친 소고 이항녕 선생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선생은 충청도 아산 출신으로, 젊어서는 문학을 하시고 나중에 법학을 공부하시어 일제 때 고등고시에 합격하고, 관에 계시다가 두 군데에서 군수를 지내고 해방을 맞이한 지식인이셨습니다. 해방이 되고 자신이 왜정시대에 군수를 한 것에 대해 참회록을 쓰시기도 했죠. 훗날 고대에서 민법 수업을 받았는데 그 때 선생으로부터 많은 인생의 감회를 받았습니다. 훗날 이 선생은 과분하게도 제 이름 석자로 삼행시를 지어 보내주셨습니다.
兪兪(유유)한 和恭容貌(화공용모) 萬人(만인)에 好感(호감) 주고
相生(상생)의 德(덕)을 지녀 나보다도 他人(타인) 생각
玉(옥)같이 깨끗한 經營(경영) 天下(천하) 밝게 하도다
그리운 이항녕, 최순우, 진태하, 강중희 회장
1977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던 최순우 선생은 우리 국민들에게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선구자로서 박물관에서 ‘전통문화 특설강좌’를 만들었지요. 소위 ‘박물관대학’이라고 불리는 이 강좌는 1977년 1기생을 모집해, 최순우 관장을 비롯해 김원룡, 황수영, 진홍섭 등 당대의 쟁쟁한 강사들이 교육을 맡아 1기생 164명이 수료하는 폭발적 인기의 수업이 되었습니다. 나는 박물관 강좌에 6기로 입학, 전통문화를 분야별로 공부해 훗날 미술품 등을 수집하고 박물관, 미술관을 개설하는데 큰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선구자의 집념에 의해 개설된 박물관 강좌는 2016년까지 40기, 1만4천819명의 수료생을 배출, 한국 전통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얼, 우리 문화를 지키고 우리 시대, 우리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국자이자 우리 문화를 수호하고 계승, 발전시켜온 진태하 박사는 대학에서 국어 문화교육에 힘쓰시며 한글과 한자문화 진흥을 위해 크게 공헌하셨지요. 박사님께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일어, 중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면서도 한국문화의 주축인 한자를 사용하지 않음을 매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첫 직장에서 모시게 된 동아제약 창업주 강중희 회장에게서는 경영자의 모델을 배웠어요.
기르고 &이루고
김 회장 유상옥 회장님께서 과거 모셨던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님도 굉장한 한자교육 제창자로서 ‘생활한자’라는 책까지 발간, 보급했는데, 유 회장님도 특별히 한자 교육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 회장 저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라”는 학이시습지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을 만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한자 공부의 중요성을 계몽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특히 코리아나 화장품 신입사원들은 입사와 동시에 ‘천자문’ 책을 배부받고 한자 한 자당 열 번씩 총 1만자를 적어 3개월 안에 회사에 제출하는 것이 입사 과제입니다.
생애의 좌우명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김 회장 문화예술인들의 세계에서는 “1등이 아니면 꼴등”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회사경영에서 1등, 박물관, 미술관 경영에서도 1등을 하신 회장님이 기르시고 이루시고 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유 회장 기업가정신으로 일의 성과를 올리고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하여 한국의 경영자, CEO로 성장하여 사회와 국가에 공헌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니고
김 회장 평생을 기업경영 하시면서, 문화재와 미술품 컬렉션 하시느라고, 바쁘신 나날을 보내고 계신데, 시간을 내신다면 주로 무엇을 하시는지요?
유 회장 나는 경영일선에 있을 때부터 여유를 내어 문화재 탐방을 다닙니다. 특히 고적을 찾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가 거대한 문화유적 국가임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전국 방방곡곡 진기한 문화재들이 많이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특히 사찰은 우리 문화재와 고적을 많이 볼 수 있는 야외 박물관과 다름없습니다. 때때로 절은 없어지고 석탑이나 비갈만이 서있는 두메산골 속의 옛 절터를 찾아가 보기도 했지요. 고적은 서울시내 근교에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주로 찾아간 곳은 강화도 덕진진, 수원 수원화성, 여주 신륵사고달사지세종대왕릉, 충주 중원고구려비 중앙탑, 예산 추사고택, 해미읍성, 서산 마애불 등 모두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경주지역과 백제문화권인 공주와 부여, 익산에서 고찰과 유적을 만나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두 지역 모두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 유적이지요. 한가지, 선배 답사자로서 권하고 싶은 것은 남들이 가는 곳을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옛 것을 찾고 옛 문화를 현대 문화와 비교해보며 감상하는 문화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펼치고
김 회장 회장님께서는 남보다 늦은 55세에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하셔서 기업경영에도, 문화경영에도 일가를 이루셨는데요. 회장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CEO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유 회장 대학이나 각종 기관, 기업체 등에 나가 강의를 하면 세 가지 덕목을 강조합니다.
첫째로 기업가정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원이 아닌 주인으로서 일한다”는 투철한 긍지와 결의를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둘째, ‘학이시습지’의 자세입니다. 언제나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배움은 끝이 없기 때문이죠. 셋째는 팀워크로 일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곳이 직장의 세계입니다. 진정한 인재란 주위의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포용과 온정의 성품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남기고 &바치고
김 회장 끝으로 코리아나 화장품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그룹처럼 재벌기업은 아니나 코리아나를 강소 화장품회사로 키우시면서 박물관, 미술관 등을 당대에 설립하셨는데요. 앞으로 우리 사회에 남기고 싶거나, 바치고 싶은 일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유 회장 작년에 제가 한국경제신문에 에세이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모 유력 일간지의 사설을 인상 깊게 읽은 내용을 소개했는데요. ‘미래의 빌게이츠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CEO’라는 주제의 분석 기사였습니다. 모집단 148명의 어린이들은 CEO라는 이미지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을 ‘부자’라고 응답했고, 이어서 부자의 조건은 ‘성실과 근면’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CEO가 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잘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에는 “무엇이든 앞장서야 한다”는 답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CEO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설문엔 “좋을 것 같다”는 응답이 다수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CEO가 된다면 어떤 회사의 대표이사가 되고 싶은가”라는 설문엔 ‘IT회사, 패션회사, 화장품회사’라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타났는데, 이를 보고 ‘화장품회사’ CEO인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들은 “CEO가 되어 부자가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항목에서 “부모님에게 효도하겠다”, “장학재단을 만들겠다”, “남을 돕는 기부에 앞장서겠다”고 응답했습니다. 나는 이 기사를 읽어보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코리아나 화장품 광교사옥 1층 로비에 설치된 ‘동서고금 화장하는 미인도’
캔버스에 유채, 세로 1.9mX가로 8.6m, 1986년
불철주야(不撤晝夜)
김 회장 마지막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회장님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코리아나 화장품의 현재와 미래 비전을 듣고 싶습니다.
유 회장 잘 아시다시피 저는 고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제약회사에서 월급쟁이로 30년을 보냈습니다. 평사원 시절에는 집에서 쉬는 것보다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불철주야 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이 당시 내가 누리던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제 자랑 같습니다만, 이런 기업가정신으로 55세에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해 오늘에 이르렀으니 꽤나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고 자평을 하게 됩니다.
코리아나 화장품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늦은 시간에 천안에 위치한 공장과 연구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저녁인데도 연구원에는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퇴근이 늦어지는 연구원 직원들을 위해 연구원 근교 아파트를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런 노사협력의 상생정신 아래 저희 코리아나 화장품은 19년 7월 기준 453건(국내 386건, 해외 67건)의 특허를 보유한 세계 초일류 화장품회사가 되었습니다. 코리아나 화장품 3대 비전 중의 하나는 “기술개발로 세계를 지향한다” 입니다. 불철주야로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원들은 코리아나 화장품의 ‘보석과도 같은 인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 회장 프랑스의 작가요, 문화부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는다”는 말을 했는데, 평생을 기업가 생활을 하면서도 ‘문화경영자’라는 꿈을 이룬 유상옥 회장님 같은 분이 프랑스의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처럼 국민 문화진흥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믿습니다. 장시간 좋은 문화재 감상과 함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월간현대경영 2019. 11 월호